주일 목사님 설교를 올립니다.

동영상URL https://youtu.be/OrYOQkyHwqU 

“예수의 길로 걸어갑시다!”

 

마태복음 7:13-20

 

2023. 10. 1 안규범 목사

 

하나님 나라에서 지켜야하는 성도의 삶(산상수훈 강해 16)

 

 

 

※ 8분 15초까지 음성녹음이 되지 않았습니다. 함께 첨부한 설교원고를 참고해주세요.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선과 악을 분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레 10:10, 신 1:39). 무엇이 진리의 말씀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만약 이 분별력이 없다면 우리는 죄에 빠지고 말 것이다그래서 솔로몬은 단순한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했다(왕상 3:9). 하나님은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왕상 3:11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을 주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가짜가 판을 친다가짜 뉴스거짓 선동이단들진리를 왜곡하는 거짓된 자들이 노략질하고 있다이런 거짓된 것에서 참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움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실제로 이러한 거짓에 선동되고 가짜 진리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다우리도 안심할 수 없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거짓과 가짜에 선동되지 않고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빌 1:10> 선함과 악함을 분별하여 선한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되어서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깨끗하고 흠 없는 모습으로 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분별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서기 위해서다분별 없이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도록 노력(엡 5:17)해야 한다그래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바른길을 걸어갈 수 있다로마서 말씀처럼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롬 12:2)하며 살아갈 수 있다이러한 분별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롬 12:1)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삶으로도 영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이러한 분별력이 매우 중요하기에 바울은 이제 목회를 감당해할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말씀했다.

 

 

<딤후 2: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좁은 문을 통과해 예수의 길로 걸어야 합니다(13-15).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며 적용을 시작한다하나님의 말씀인 산상설교를 들었으니이제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산상수훈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기발하고 좋은 말로만 받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까지 더 해져야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다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고 전적으로 동의하며 감탄해도들은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12에서 멈추지 말고 13부터 산상수훈 마지막 절까지 가야 한다우리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장성한 분량까지 올라가야 한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며 두 길(넓은 길과 좁은 길), 두 선생(거짓 선생과 참 선생), 두 열매(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 그리고 산상수훈 마지막 시간에 살펴볼 두 기초(모래와 반석)에 대해 묘사하시면서 그동안 들었던 산상수훈 말씀에 순종할 것을 요청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은 명령하신다(13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왜 하필 좁은 문일까화려하고 튼튼한 넓고 큰 문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것일까넓은 문으로 가면 안 된다그 넓고 화려한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넓은 문으로 들어가기는 너무 쉬워 사람들이 그곳으로 많이 들어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한다13 멸망으로 가는 문은 넓고 그 길이 쉬워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간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그 문은 넓어서 들어가기가 편하다고난이 있거나 고통이 있어 통과하기 어려운 문이 아니라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이는 문이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좁은 문은 너무 작아 들어가기조차 힘겹다문만 작은 것이 아니라 문 뒤에 있는 길도 매우 비좁고 걸어가기 힘들다때론 갓난아기처럼 기어가야 할 때도 있고엎드려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그래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해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다고 예수님은 말씀해 주신다14 그러나 생명으로 가는 문은 작고 그 길이 매우 좁아그 곳을 찾는 사람이 적다.”

 

 

두 개의 문은 겉보기에도 큰 차이가 있지만그 문을 열고 들어가 그 길의 끝마지막의 차이는 더 크다넓은 문의 마지막은 멸망이지만좁은 문의 종착지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다이 땅을 살아가면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 그 넓은 길로 가는 것이 편할지 모른다하지만 그 마지막은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는 멸망이다.

반면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향한다는 것은 힘겹고 때론 어려움이 따르고 섬기고 먼저 희생해야 하는 길이다팔복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야 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사람들과 화평을 이루어야 한다선을 베풀고 비판을 멈추고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길이다하지만 그 길의 끝은 영생천국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이처럼 넓은 문의 끝과 좁은 문의 끝의 종착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쓴다그 길의 끝을 몰라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알고도 쾌락을 즐기기 위해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도 많다.

 

 

이러한 개념이 이미 시편 1을 통해 기록되어 있다시편 1에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대조한다시편 1:1-2을 보자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의인은 넓은 길로 들어서지 않는 자들이다그 문과 길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비록 좁지만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즐거워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며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자들이 바로 복이 있는 자들이고 의인의 길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좁은 문을 통과해 좁은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왜 이런 좁은 길을 걸어야만 하는 것일까넓은 문을 통과해서 조금 더 편하고 좋은 길로 가다가 그 길이 끝이 천국이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그리스도인들이 좁은 문과 좁은 길로 가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예수님이 먼저 그 좁은 문을 통과해 좁은 길로 가셨기 때문이다예수님이 그 좁은 길목에 허리를 숙이고 겸손히 우리를 기다리며 길목마다 서 계신다길은 좁지만예수님과 더 가까이 붙어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넓은 길에는 예수님이 없다넓은 길은 예수님과 동행할 수 없는 길이다넓은 문과 길은 사탄이 위장해서 기다리고 있고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문이다넓은 문이 아닌 좁은 문을 통과해 좁은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며 그 은혜를 누리며 걸어 갈 수 있기에 힘겹지만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로 가야 한다그리고 그 좁은 문과 길은 바로 예수님 자체이고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요 10:9> 나는 문이다나를 통해 들어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 좁은 문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문을 이미 통과한 사람이고 그 좁은 길을 예수님과 동행하며 걷고 있는 성도이다오직 예수님만이 그 길이고 그 진리이며 그 생명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다예수님은 좁은 문인 동시에 좁은 길이고 생명이시기에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우리도 따라 가야한다(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지만 좁은 문을 통과하고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이 말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당하는 고난과 핍박어려움도 있겠지만그 좁은 문을 발견하는 것조차 어렵다그 길을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하게 방해하는 자들이 있다우리가 좁은 문을 발견하고 좁은 길에 들어섰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넓은 문으로 끌고 가려는 자들이 있다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다이어지는 15을 보자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다가온다그러나 그 속은 굶주린 늑대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넓은 문이 바로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그 길의 끝이 천국이라고 거짓 선동한다많은 사람이 선과 악에 대해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없어 그 말에 속아 그 문으로 들어가 버린다거짓 선지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리고 선동하여 우리를 혼란하게 하고 좁은 문을 발견하지 못하게 미혹할 것이며 그 좁은 문을 가까스로 통과했지만그 좁은 길을 걷고 있는 자들에게까지 나타나 유혹하며 넓은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그 거짓된 자들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예수님은 여기서뿐만 아니라 세상의 종말을 이야기하면서도 다시 한번 더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한다.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서 큰 증거를 내보일 것이고기적을 일으킬 것이다그래서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선택하신 사람까지 속일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6에서 말씀하는 단지 거룩한 것을 짓밟고 물어 버리는 개와 돼지들이 아니다(마 7:6). 그들의 속 모습은 양들을 무참히 잡아먹는 굶주린 늑대이지만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양의 옷을 입고 위장해 오는 자들이다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척 우리들에게 다가오며 자신들이 마치 참된 목자인 양 우리를 속인다우리를 좁은 길로 가지 못하게 방해하며 넓은 길로 끌고 가려는 악한 자란 뜻이다.

 

 

한편성경에서 하나님을 믿는 성도를 양으로 많이 비유하는데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도 그리스도인을 양으로 비유한다참된 목자는 예수님뿐인데 거짓된 자들이 자기가 참된 목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양들을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하며 끌고 가 해친다늑대는 양들을 먹이로만 생각하기에 양들의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참된 목자의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한복음 10장으로 가보자.

 

 

<요 10: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우리가 참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기에 그 음성을 듣고 목자를 따라간다하지만 거짓된 자들은 양의 문으로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넘어와 목자의 음성을 흉내 내어 양들을 불러 속이며 양들을 미혹하여 잡아먹는 자들이다그들은 강도이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다.

 

 

우리에게도 참된 목자가 양들을 부르는 것처럼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 귀에 생생하게 들리면 좋겠지만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이제 그렇게 역사하지 않는다지금은 계시의 종결이 일어났다완전한 66권 성경이 이미 완성되었다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인 것과 마찬가지인 성경이 우리 손에 있다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시간이 지나 우리가 잘못 기억할 수 있지만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은 그 음성보다 더 확실하게 기억되며 분명하다이미 글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으려고 해서 문제이다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문제다.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예수님의 육체는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그 말씀은 글로 남겨져 있다지금은 예수님을 만질 수도 없고 실제로 볼 수 없다하지만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만지고 느끼고 볼 수 있고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그래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더 가까이해야 한다성경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쳐 주신다그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 하나님을 주시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11).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를 좁은 문을 발견하지 못하게 방해하며 그 길에서 벗어나게 끌어당긴다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충만그 열매를 맺는 것을 계속해서 방해하는 자들이다우리는 그 미혹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선한 목자의 말씀을 따라 좁은 문좁은 길로 다시 들어서고 인내하며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예수님은 영생의 문그 좁은 문을 열기 위해 극심한 고통과 모진 고난을 받아 친히 그 문의 열쇠가 되었고그 좁은 길을 내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렸기 때문이다.

 

 

<요 10:11-15>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의 문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해 좁은 문을 통과하고 좁은 길의 끝은 천국영생의 문이 이미 활짝 열려 있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예수님은 자발적 순종으로 보혈의 피를 흘리며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열어놓으신 좁은 문과 길을 만들어 놓으신 곳이다그 길은 너무 좁아 어렵고고난이 있는 길이지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동행하는 길이며 우리가 힘겨워할 때 우리를 자신의 등에 업고 가시기도 하시고 못자국난 두 손을 내밀어 우리의 연약한 두 손을 잡아 주시기도 하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땐 우리의 등 뒤에서 예수님의 온 몸으로 우리의 등을 힘껏 밀어주시는 그런 은혜가 있는 길이다그리고 그 길의 끝은 영생의 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천국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과 함께 좁은 길을 걸을 때 열매는 풍성합니다(16-20).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거짓 선자들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열매로 말씀해 주신다16-17 그들의 열매를 보고그들을 알 것이다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있느냐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있느냐마찬가지로 좋은 나무는 모두 좋은 열매를 맺고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선한 목자와 거짓된 자들의 열매는 확연하게 다르다선한 목자의 열매는 좋은 열매이다그리고 거짓된 자들의 열매는 나쁜 열매로 나타난다그래서 그들의 열매로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분별할 수 있고 거짓된 자를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를 말씀해 주신다가시나무에서 포도 열매가 딸 수 없으며 엉겅퀴(가시가 있는 풀)에서 무화과는 열리지 않듯 그 나무의 본질에 따라 열매를 맺게 된다.

나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 나무가 감나무인지 밤나무인지대추나무인지 잘 모를 수도 있다저도 후세대교회로 부임하기 전까지 나무에 대해서 잘 몰랐다이곳에서 살아가면서 ~! 이 나무가 대봉나무였군이 나무가 대추나무였네이것은 석류였구나!”라고 알 수 있다.

이처럼 열매를 결정하는 것은 나무에 의해 결정된다나무가 어떤 나무인지에 따라 감이 열리거나 대추가 열린다청원리에도 많은 나무들이 있는데대추나무에 감이 열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여기서 열매란 그 사람의 성품과 행동을 말한다거짓된 자들의 열매는 먹지 못하는 뱀딸기다뱀딸기는 자신이 산딸기인 것처럼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속인다그들의 행동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르는 행동이다겉보기엔 순한 양 같은 성품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함께 지내다 보면 금방 사나운 늑대임을 드러낸다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거나 자기 삶에 방해가 되면 금방 화를 내는 사람이다이런 행동을 나타내는 것은 아무리 양의 탈을 쓰고 있어도 양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사나운 늑대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들의 열매는 다 악하고 더럽다갈라디아서 5을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른다고 말씀하면서 육체의 일이 분명함을 말씀해 준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선한 일을 하자고 해놓고 성질을 부리는 것은 선한 열매가 아니다분쟁을 일으키고 교회 안에서 당을 짓고 분열을 일삼는 것은 거짓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자신에게 있는 들보는 빼지 않고 형제의 눈에 있는 티만 자꾸 빼려고 하여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그런 사람에게는 사랑과 용서가 없다거짓된 사람의 끝은 음행과 더러운 것뿐이다이런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지옥의 형벌멸망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18-19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잘려서 불 속에 던져진다

 

 

이 말씀처럼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는데좋은 나무는 무엇일까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하고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이 좋은 나무인 포도나무이기에 우리는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므로 그 나무에 바짝 붙어있어야 한다그래야만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지 혼자 열매를 맺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금방 말라버리고 죽게 된다.

예수님이 목숨 바쳐 만들어 놓으신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버려지거나 땔감으로 사용될 뿐이다.

 

 

<요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만드신 좁은 길예수님의 길로 향할 것을 말씀하고 있다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그 길은 좁고 힘겹고 어렵지만예수님 자신 목숨 바쳐 만든 문이며 길이기에 그 안에 있을 때 선한 열매를 맺고 거짓됨을 분별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바로 육체의 소욕과 반대되는 성령의 열매이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좋은 나무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인다아홉 가지 열매라고 해서 어떤 줄기에는 사랑의 열매가 열리고 다른 가지엔 희락이 열매화평의 열매가 따로따로 맺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 안에 이 아홉 가지의 맛이 난다고 비유할 수 있겠다우리가 어떤 열매를 먹을 때 달콤한 맛신맛싱그러운 맛처럼 다양한 맛이 난다성령의 열매도 아홉 가지인 사랑희락화평오래 참음자비양선충성온유와 절제까지의 맛을 내야 한다우리는 이러한 삶의 맛을 내며 좁은 길을 걸어야만 한다.

 

 

바울이 육체의 일과 반대되는 것을 성령의 열매로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열매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감나무에 감이 열렸다고 해서 아직 녹색인 감을 먹게 되면 감의 맛은 나지 않고 떨기만 하다열매는 익어야 제맛을 낼 수 있듯이 우리의 모습도 그렇다아직 맛이 부족할 수도 있고 그 열매의 크기가 작을 수도 있지만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성령의 열매를 맺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보통 나무의 열매가 매년 열리는 것처럼 열매는 해마다 열리게 되는데 어떤 해는 그 열매가 부족할 수 있지만내년에 더 성장한 열매로 자라 있으면 되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믿음을 성장시키어 성령의 아홉 가지 맛이 제대로 나는 열매는 맺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열매의 모습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거짓 된 자임을 드러내는 꼴이 된다거짓 선지자는 그럴 수밖에 없다진짜인 것 같지만나무에 붙어있지 않기에 곧 섞어져 버릴 것이고그 정체는 들통이 나고 말 것이다거짓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 이단의 교주들이 그렇다그들의 열매는 범죄이고 온통 죄악으로 가득 차 있다이단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종교지도자들도 거짓 된 자가 많다는 현실에 속을 쓰리게 만들며 뼈를 아프게 한다우리도 안심할 수 없다좁은 길에 벗어나 넓은 길로 가고 있다면 예수님에게 붙어있지 않고 다른 나무에 접 부쳐졌을 땐 악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고그 나무와 가지는 날카로운 전기톱으로 잘라내어 불 속하나님의 심판 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그래서 예수님은 20에 이렇게 말씀한다그러므로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열리는 열매로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좁은 문을 통과하여 좁은 길을 걸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넓은 문과 그 길의 근처도 가지 않아야 한다그 화려함과 쾌락을 보고 나도 모르게 그 미혹에 넘어가 버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부디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므로 예수의 길을 걸으며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인생이길 바란다.

 

 

 

 

나오면서 – 좁은 길을 걸으며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길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오늘 본문을 살펴보았다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 판단하는 것을 우선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믿음을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비록 좁은 길이지만 그 문을 통과하여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우리의 가지가 생명의 나무에서 떨어져 있다면 속히 생명의 나무에 다시 접붙여져야 한다속히 넓은 길에서 벗어나 다시 좁은 길로 걸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우리 인생의 끝이 멸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날마다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하며 그 말씀 안에 있어 순종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무르익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의 해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빗줄기로 물을 주어야 한다그래서 그 열매를 완성하며 맛있는 성령의 아홉 가지 맛이 나는 인생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먼저 가신 그 좁은 문과 좁은 길로 들어서 우리 또한 예수의 길을 묵묵히 인내하며 소망을 가슴에 품고 걸어가야 한다그곳은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곳이며 그 길의 곳곳에는 은혜와 긍휼의 꽃이 피어 있는 길이다그 꽃길을 걸을 때 그리스도의 진한 향기로 위로를 받게 되는 길이다또한 길모퉁이에는 생명의 나무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 생명의 나무마다 의의 열매들이 열려 있어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그 말씀의 열매들을 먹으므로 새 힘을 얻고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고 우리의 삶으로도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에 속지 말고 좁은 문을 통과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예수의 길을 믿음으로 걸으며 강하고 담대하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소망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한다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고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며 경건을 지키므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란다.

 

 

<딤전 4:7-10> 하나님의 진리와는 다른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르침에 솔깃하지 말고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스스로를 훈련시키십시오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도움을 주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의 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합니다. 경건은 이 세상에서의 복뿐 아니라앞으로 올 세상에서의 복도 약속해 줍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믿음을 가지고 받아들이십시오우리는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왔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실 분이며특별히 믿는 자들에게 구원자가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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